군대에서 끄적거린 각종 음악잡설들, 그리고 이제 초안을 작성하기 시작한 나의 '진정한 자작곡들' 에 묻혀서 며칠을 보낸 것 같다. 잠자거나 밥먹거나 할 때 빼면 컴퓨터 앞이나 책상 앞에서 계속 지내니까 머리도 아프고, 쉽게 피곤해지는 통에 뭔가 '전환점' 을 마련해야 겠다 싶어서 무작정 집을 빠져나온 것이 15시 쯤.
일단 발 가는 대로 지하철을 탔다. 군 복무 때문에 미답 구간이었던 중앙선(회기~덕소)을 한 번 갔다오고 나니까 벌써 저녁놀이 지고 있었고, 일단 회기에서 인천행을 갈아타고 가다가 신설동에서 내렸다. 그리고는 2호선 성수지선을 잡아탔다. 정말 목적도, 동기도 없는 짓거리를 계속 하다가 신답역에서 또 무작정 내렸는데, 눈앞에 과자 자판기가 들어왔다.
뭐 과자 쪼가리야, 동네 할인마트에서 사먹는게 훨씬 싸게 먹히기는 하지만...
이게 눈에 들어와서 말이었다. 원체 초콜릿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단맛을 무자비하게 줄인 다크초콜릿 계통의 상품이 득세하는 와중에 '흐름 한 번 타볼까' 하는 마음으로 하나 뽑아 봤다. 사실 56%부터 시작하려고 했지만, 동그란 통에 든 데다가 가격도 두 배나 비싸서 어쩔 수 없이 1500원짜리 72%를 사야 했다.
그리고 역을 빠져 나오면서 한 개를 입에 넣어 봤는데, 첫맛은 일반 초콜릿과 다름 없이 달달했다. 하지만 계속 녹여 보니깐...
...써...OTL거기다가 뒷맛은 카카오버터땜시 좀 느끼하고...하여튼 밀크초콜릿이나 화이트초콜릿 종류를 좋아하는 내게는 거의 컬처 쇼크였다. 72%가 이럴진대, 메이지나 린트의 99%는... 어쨌든 달콤씁쓸느끼한 다크초콜릿과의 첫 대면이었다.
아무튼 초콜릿을 깨작거리면서 청계천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나온 김에 청계천 산책로 미답구간을 걸어서 집으로 가겠다는 심사였다. 이미 날은 어두워져 있었고, 걷기 운동을 하거나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을 빼면 한적한 인상이었다. 그나마 고산자교 구간부터는 자전거나 스케이트도 금지되어 걷는 사람 뿐이었다.
동대문~고산자교 구간은 갔다 온 사람들 말로는 볼거리는 그다지 없는 구간이라고 했다. 볼거리 보다는 생태계 체험 같은 자연 보존 측면의 수변공원 구간이라는 것이었는데, 그래도 그렇게 적적한 분위기 자체를 즐기면서 계속 걸었다. 무엇보다 조용한 점이 마음에 들었다. (덕분에 바이올린 소나타 같은 실내악을 별 방해받지 않고 계속 들을며 걸을 수 있었다.)
하지만 기대했던 터널분수는 날씨가 점점 쌀쌀해져서 그런지는 몰라도 가동되지 않고 있었고, 리듬벽천도 그냥 그저 그랬다. 정작 내 발목을 가장 오래 붙든 것은 그보다 좀 더 걸어야 나오는 곳이었다. 바로 '소망의 벽(또는 참여의 벽)'.
각계 각층,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수많은 이들이 청계천 복원을 기념해 손바닥 정도의 사각 타일에 그림이나 글씨 등을 새겨넣은 것이 20000장 가량 붙어 있다는 것이었는데, 물론 한 장 한 장 일일이 다 볼 수는 없었지만 대충 한 쪽면의 것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냥 시시하게 소속과 이름만을 적은 단체장이나 기업인도 있었지만, 타일 대여섯 장을 할애해 장시를 적어 놓은 것도 있었고 갖가지 그림을 그려놓은 것도 있었다. 교통봉사대인가 뭐시긴가 하는 단체의 것은 전국 각지의 지부에서 자기 고장의 상징물-예로 진주 같은 경우에는 논개의 가락지라던가, 남원은 그네타는 춘향이라던가, 부산은 갈매기라던가, 천안은 호두과자라던가-을 캐릭터에 대입시켜 그려놓은 것이 인상적이었다.
무엇보다 가끔씩 나오는 이스터 에그틱한 몇몇 타일들이 좀 얄궂고 야릇한 즐거움을 안겨 주었는데, 드래곤볼의 손오공이라던가 아즈망가 대왕의 오사카, 심지어 진월담 월희의 알퀘이드까지 있었다. 청계천 복원과 그다지 상관 없는 오브제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오히려 그러한 점 때문에 가장 인상적인 대목이었다. 어쩌면 지금 이 시대의 한 단면을 반영하는 역사적인 기록일 수도.
(아무튼 디카를 빨리 사야 겠다. 저런 것들 외에도 찍고 싶은 것들이 너무나 많다.)
일단 이로써 청계천 구간 답사는 끝났다...싶었는데, 사실 '공식적인 청계천 산책로' 는 청계광장부터 뚝섬 서울 숲에 이르는 무려 11km나 되는 긴 구간이라고 한다. 고산자교 쪽에서 그 팻말을 보고는 좌절하고 말았다. 군대에서 그렇게 질리도록 걸었으면 됐는데 말이다. ;W;
*special thanks to:
다인의 편의점 이것저것(드림카카오 72% 짤방), 나오키 홈페이지(싱하형 짤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