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느 새 '오덕후' 의 길을 걷고 있는 나. 하지만 지난 3월 코믹월드 때의 감상문은 일부러 쓰지 않았다. 내가 점점 멀어져 가고 있다고 생각해서였다. 실제로 전리품(???)도 별로 없었거니와, 뭔가 인상에 확 남는 물건이 없어서 더욱 그러했고.
뭐 그렇다고는 해도, 이번 5월 코믹 입장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일부러 예매권을 사는 수고까지 하고 있는 걸로 봐서 완전한 결별까지는 멀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도 내 속내를 모르고 사는 형편이니.

코믹월드 홈페이지 약도를 보고 갔다가 이리저리 헤맨 끝에 찾아낸 건물. 하지만 이 건물이 맞다고 확신하기 전까지 근방을 세 번이나 왔다갔다 해야 했다. '서교프라자' 라고는 했는데, 오히려 눈에 띈 폴사인에는 '서교쇼핑' 혹은 '서교오피스텔' 이라고 중복 표기가 되어 있었기 때문.

윗 사진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오른쪽 골목으로 돌아가면 나오는 입구. '프라자' 와 '오피스텔' 이 병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코믹월드 사무실은 2층에 있었다.
처음 찾아가 본 곳이었는데, 생각과는 다르게 무척 조촐한 사무실이었다. 직원도 두어 명 정도 뿐이었고. 다만 동인지와 일본 중고원서 판매대행 코너가 유달리 눈에 띄었고, 지난 여러 차례 인연이 있었던
양삥 화백의 주작 일러스트가 표지를 장식하고 있는 3월 부코 가이드북이라는 아이템을 입수하는 행운을 누리기도 했다.

사온 예매권 두 장. 밑에 받침삼아 들고 있는 것이 문제의 부코 가이드북이다. 하루만 갔다올까 생각하면서 잠시 망설였다가 두 장을 사와 버렸다. 당일치기로 참가하는 부스들에서 이스터 에그가 있기를 덧없이 바라면서.
#2
코믹월드 사무실을 나와서, 두 번째 목적지였던 툰크에 가기로 하고 횡단보도를 찾아서 미화당레코드 쪽으로 걸어갔다. 하지만 그 길에 눈에 띈 어떤 곳 덕분에 즉석에서 예정을 바꿔야 했다.
지난 번 석촌 쪽 가게가 폐점한 이래로 전혀 정보가 없던 만화책 전문 헌책방을 드디어 찾아낸 것이었다.

사진에서 보이는 '코믹토토' 가 가게 이름이었는데,
홈페이지도 있었다. 가게 내부 사정상 들어가서 사진을 찍어오지는 못했지만, 꽤 구색이 잘 갖춰져 있었다. 혹시 석촌 쪽에 있던 매장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 물어보려고 했지만, 전화가 많이 와서 포기했다.
다만, 석촌에 있던 가게와는 달리 세트 위주로 판매하는 것 같았다. 낱권 코너가 따로 있었지만, 그 비율은 1/3 정도로 비교적 낮은 편이었고, 대여점 폐점 때 조달해온 책들이 대부분이라 '깨끗한 중고품' 을 원하는 사람에게는 곤란하리라는 생각도 들었다.
어차피 나야 만화책에 그러한 결벽성 주문을 하는 것도 아니고, 파본이나 낙장만 아니면 아무래도 좋다는 마인드라서 크게 신경 쓰이지는 않았다. 다만 집에 소장중인 단행본 현황이 당장 생각이 안나서 일단 다음 기회에 지르기로 하고는 다시 나왔다.
#3
예매권을 구입한 지 하루 뒤, 그러니까 어제 밸리를 돌다가 무척 흥미있는 글을 봤다. 온라인 매장들에서 애니메이션 DVD를 믿을 수 없을 만큼 헐값에 팔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지금까지 구입한 애니메이션 DVD라고 해봤자 AIR 극장판의 스페셜 에디션(물론 일본판) 뿐이고, 국내에서 라이센스로 제작한 애니메이션 DVD는 하나도 없는 형편이다. 대체 얼마나 싸길래 하는 생각으로 핫트랙스 쪽을 검색해 봤다.
결과는 경천동지할 정도였다. 13부작 정도의 TV 애니메이션 세트는 10000원을 좀 넘는 가격이었고, '오 나의 여신님' 5부작 OVA는 8000원대라는 가격이었다. 아니, 이건 싼 차원을 떠나서 뭔가 '떨이' 의 강렬한 포스가 느껴지는 가격이 아닌가.
물론 예전에도 국내 DVD 시장이 상당한 위기를 맞고 있었다는 소식은 여러 차례 들어 왔었는데, 이 지경이라면 매우 심각한 상황인 것이 확실하다. 시중에 유통된 지 10년도 안되는 제품들이 길거리에 굴러다니는 해적판 마냥 가격이 뚝 떨어져 팔리고 있다니.
일단 이것 저것 보다가 '투 하트' 세트를 택해서 온라인 주문했다. 물론 예전부터 마음에 두고 있던 제품을 싸게 샀다는 기쁨은 있었지만, 그보다는 우려와 걱정이 많이 앞섰다. 시장이 이 정도로 구매력과 경쟁력이 떨어진다면, 앞으로 신보 DVD는 계속 줄어들 것이니 말이다.
나도 애니 쪽에서는 거의 다운로드족으로 살아 왔기 때문에, 이런 사태에 대해 어느 정도의 책임감을 느꼈다. 그리고 이 주문을 기회로 국내 라이센스로 나온 작품들은 떳떳하게 DVD로 구매해서 봐야 겠다는 알 듯 모를 듯 한 사명감(???)까지 들었고.
그래서 일단 다음 타깃은 비교적 최근에 나온 '영국사랑이야기 엠마' 로 정했는데, 거의 80000~90000원 대라서 따로 알바를 해야 할 듯 하다. DVD 구매 계획 물망에 일찌감치 올라가 있던 '아즈망가 대왕' 같은 DVD 조차도 대부분의 온라인 매장들에서는 품절 상황이라는 현실이 정말 암울했다. 일단 오프라인을 돌면서 재고 유무와 가격대를 일일이 확인해야 할 듯.
이글루스에도 요즘 한미 FTA 타결과 더불어 저작권에 대한 여러 우려섞인 글들이 눈에 띄게 올라오고 있는데, 언젠가는 다운로드족들의 천국으로 여겨지고 있는 P2P 사이트들도 강한 역풍을 맞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때 데여서 이런 저런 불평을 하기 보다는, 지금이라도 국내에서 구할 수 있는 것은 제값을 치르고 사던가 빌리던가 해서 향유하는 인식이 확산되었으면 하는데...힘든 걸까?
(물론 나도 그런 '결심' 을 하는 데 어느 정도 갈등이 있었으니, 다른 사람들은 오죽 할까. 더군다나 '애니메이션=아동용' 이라는 소싯적 관념이 지배하고 있는 이 한반도 남반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