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복학은 안했지만, 학교에 음대 도서관(약칭 음도)이 생기면서 거의 복학생마냥 평일만 되면 학교에 가고 있는 중이다. 진작에 생겼어야 하는 곳이었는데.
어쨌든 음대로 가는 길은 정문보다는 기숙사 쪽이 더 빠른데, 여차저차 하면 외대 쪽으로 골목을 돌아 나올 수도 있다. 그래서 이번에 집에 갈 때는 외대 쪽으로 돌아나오는 루트를 선택했다.
점심까지 걸러 가면서 악보와 음악 관련 서적들을 열람하느라 꽤 배가 고팠는데, 일단 대학가 근처라면 흔히 있을 싼 음식점 정보를 적어놓은 수첩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딱 멀지 않은 곳에 있다는 집을 찾아냈다.
'하늘푸름' 이라는 이름의 가게였는데, 외대앞 롯데리아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오른쪽에 나 있는 골목으로 들어가면 오른편에 보이는 곳이었다. 골목 안에 있다고 해서 한참 헤맬 각오를 했지만, 의외로 찾기가 무척 쉬웠다.

가게는 지하에 있었는데, 위와 같이 꽤 요란한 간판이 있어서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계단을 내려가면서도 온통 음식 사진들이 붙어 있어서 배고픔이 더 심해졌다.
일단 초행길에 혼자였으니 좀 뻘쭘하게 들어갔는데, 가게 자체는 그리 넓지는 않았다. 하지만 여느 대학가 음식점들처럼 공간 활용의 지혜를 최대한 발휘한 모습이었는데, 특히 오른 편에는 2층침대 비슷하게 나무로 세팅한 '양반다리식' 좌석이 마련되어 있었다. 나는 그 밑의 좀 어두운 구석 테이블에 앉았다. (그 때문에 아래부터 나올 음식 사진들이 너무 어두워서 보정을 했는데, 뽀사시톤 비슷하게 돼버렸다.)

메뉴판. 여느 음식점 메뉴판과 디자인은 비슷하게 보이지만, 찍히지 않은 왼편에는 같은 내용을 거꾸로 뒤집은 것이 하나 더 있어서 맞은 편 테이블에 앉은 손님이 메뉴판을 돌려볼 일이 없게 하려는 센스가 엿보였다.
일단 이 집의 간판 메뉴라는 왕돈까스를 시켰다.

주문하고 나서 곧장 나온 반찬들. 김치와 단무지는 그렇다 쳐도, 같이 나온 떡볶이가 인상적이었다. 양은 적었지만, 어느 정도 시장끼를 달래는 효과가 있었다.

이어 얼마 지나지 않아 나온 왕돈까스. 다만 그 크기는 지난 번에 포스팅한 우리 동네 단골 돈까스집보다는 좀 작았다. 고기 두께도 더 얇아서 좀 불만이긴 했는데, 어쨌든 배고픈데 장사는 없었다. 일단 스피드를 올려 마구 때려넣기 시작했다.
이 집의 메리트 중 하나가 '서비스' 였는데, 자리에 앉을 때부터 '필요하신거 있으면 말씀하세요' 라는 말이 몇 번이고 되풀이 되었다. 이미 단골인 다른 손님들은 밥이던 반찬이던 음료수건, 부족하면 거리낌없이 리필을 요구하고 있었다.
어쨌든 그 양은 아직 모자란 것 같았다. 일단 다 먹어갈 때 쯤, 주인장 분이 오시더니 '리필해 드릴까요?' 라고 물으셨다. 거의 다 먹었는데 뭘 리필하지? 라는 의문스러운 표정을 지으니까 '같은 값 이하 메뉴는 한 번 리필해 드릴 수 있거든요' 라는 말이 뒤이어 나왔다.
...리필??!!!... 지금까지 돈까스 매니아로 자부하면서 이곳저곳 돌아다녀 봤지만, 밥도 아니고 반찬도 아니고 음료수도 아니고, 돈까스가 리필되는 집은 이 곳이 처음이었다.
일단 주인장 분이 권해 주신 카레돈까스를 리필 요청했다.

리필로 나온 카레돈까스. 다만, 리필이라는 것 때문인지 양은 살짝 적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이미 어느 정도 찬 배에 더 우겨넣으니 엄청난 만복감을 느낄 수 있었다. 고기도 왕돈까스 보다는 좀 더 두꺼웠고.
리필까지 다 먹고 나니 주인장 분이 음료수를 권해서, 사이다를 한 잔 마지막으로 마시고 나왔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사진은 못 찍었지만, 골목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보면 와플 노점상이 하나 있다. 이미 만복감을 느끼고 있었지만, 구제불능 와플홀릭이기도 했기 때문에 일단 무작정 들이댔다. 와플을 받고 1000원을 지불한 뒤 돌아가려고 하니까...
"학생! 잔돈 받고 가야지!!"
...잔돈??!!!... 판매대 밑에 보니까 '1개 500원' 이라고 되어 있었던 것이었다. 역시 대학가는 대학가다.
가격 면에서는 학생식당과 경쟁하기 버거울 지는 모르겠지만, 대학가 음식점들도 돈이 궁한 학생들이 어렵잖게 배채울 수 있는 점에서 완소 급이다. 특히 저 하늘푸름이랑 와플 노점상은 여차 하면 단골이 될 것 같다. 학교갈 일만 있으면 별도의 교통비 없이도 사먹고 올 수 있으니까.
아무튼 음대 도서관이라는 정신적인 만족감과 육체적인 만복감 양 쪽이 충족되고 나니, 그 동안의 꿀꿀한 기분들도 다 날아가는 것 같았다. 이제 작곡만 어느 정도 불이 붙으면 좋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