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울산에 다녀올 일이 있었는데, 특별히 도시락을 싸다니는 습성이 없던 지라 뭔가 먹을걸 사가지고 가야 했다. 그래서 그저께 명동엘 다녀왔는데, 일단 외출의 진짜 이유는 대한음악사에서 토요일 서울 공연 때 볼 악보를 사는 거였다. 악보를 산 뒤 갑자기 생각이 나서 지난 번에도 포스팅했던 중국과자 전문점인 '도향촌' 에 가봤다.
...하지만 진열장은 온통 하얀 종이가 깔린 폐쇄 공간(???) 뿐이었다...OTL 지난 번 만삭이셨던 카운터 종업원 분은 배가 쏙 들어가신 채로 '과자가 다 나가서 그런데, 새로 굽고 하려면 시간이 좀 걸리거든요' 라고 난감한 대사를 읊으셨다.
그래서 눈물을 머금고 진열장에 유일하게 남아 있던 여남은 두 품목을 사서 가지고 왔다. 바로 도향촌 최고가 과자인 십경월병이랑, 정말 미묘한 맛의 양갱인 산사고 두 종류.
아무튼 나와서 집에 가려다가, 언젠가 효창공원 쪽에 '전통적인 짜장면' 을 한다는 중국음식점이 있다는 얘기를 들은 걸 생각해 냈다. 모 철도 동호회 회원의 홈페이지에서 그 정체를 알 수 있었는데, 정확히는 효창공원이 아닌 '대한노인회' 라는 곳의 맞은편이라고 했다.
그 쪽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이라서 어떻게 가야 되는지 교통편을 알아봤었는데, 지하철을 타도 6호선 효창공원 역에 내려 20분 가량 언덕길을 올라가야 한다고 했다. 버스를 타야 제일 가깝다고 했었는데, 일단 명동 지하상가 쪽의 버스 정류장에서 '대한노인회' 라는 정류장이 표시된 노선이 있을까 하고 찾아봤다.
그냥 막연하게 들여다본 거였는데, 놀랍게도 한 대가 있었다. 해운센터 앞에서 서는 0015번 녹색 버스였는데, 길을 건너가 타고 갔다. 숙명여대를 빙 둘러서 2차선 혹은 1차선 일방통행 도로를 따라 고개를 올라가는 기이한 노선이었는데, 일단 대한노인회 정류장에서 내렸다. 다른 버스로는 역시 녹색 버스인 0016번과 마을버스인 마포17번이 정차하고 있었다.

문제의 중국집 '신성각' 은 정류장에서 조금 올라가니 나왔다. 다만 간판이 가게 정면이 아닌, 측면 건물의 담벼락에 붙어 있어서 조금 헤맸다. 간판에는 다른 웹페이지의 짤방들에서도 봤던 '열두시십분' 이라는 전화번호 표기의 센스를 볼 수 있었다.

가게 앞의 '선언문'. 가게 주인 분이 기다려 온 21세기의 손님으로서 들어가 봤다. 원래는 볶음밥을 시켜보려고 했는데, 밥이 다 떨어졌다고 해서 짜장면 곱배기를 시켰다. 가게 안은 그다지 크지 않고 오히려 작은 편이었는데, 철가방이 있는 것을 봐서는 배달도 하고 있는 것 같아 보였다.
메뉴도 다른 중국집이 '식사부' 와 '요리부' 로 나뉘어 갖가지 요리를 선보이고 있는 것과 달리 짜장면, 간짜장, 짜장밥, 짬뽕, 짬뽕밥, 우동, 볶음밥, 울면, 만두, 잡채밥, 잡채, 탕수육 뿐으로 매우 간소한 편이었다. 술은 일체 없었고, 심지어 손님이 사가지고 들어오는 것도 엄금하고 있었다. 쉬는 날은 매주 일요일과 명절 연휴, 여름 휴가라고 되어 있었고.

요리하고 계시는 주인장 분. 수타로 면을 만들고 있는 장면이다.

기다리면서 찍은 가게 안의 '타임캡슐' 격인 사각형 어항. 속에는 탁상시계, 종이탈, 등산용 버너, 구형 삐삐와 핸드폰 등등 '구시대 유물' 이 가득했다. 하지만 개중에는 트랜스지방 관련 기사를 스크랩한 '최신 자료' 같은 것도 들어 있다. 어항 위에 올려져 있는건 등산 관련 잡지와 커피 자판기.

그리고 주문한 짜장면 곱배기(4000\)가 드디어 나왔다. 일반 중국집에서 쓰는 것 보다는 좀 작은 사이즈의 그릇에 가득 담겨 나왔는데, 비비기가 좀 불편했다. 일단 대충 비빈 다음 입에 넣었는데, 일반 중국집 짜장면의 달달한 맛이 전혀 없어서 좀 당혹스러웠다.
듣기로는 캐러멜 색소 같은 것을 일체 쓰지 않고 춘장 만으로 소스를 만든다고 했는데, 같이 볶아 내는 양배추와 양파, 파, 당근 같은 야채들도 아삭아삭하게 살짝 익혀놓은 것이었다. 수타면도 거의 굵은 칼국수 모양이었고.
처음 먹을 때는 상당히 투박한 인상이었지만, 반절 쯤 먹고 보니 어느새 적응이 되어 있었다. 물론 전통적인 방식인 '단무지로 그릇 닦아 싹싹 비우기' 스킬로 마무리. 다음에는 볶음밥을 꼭 먹어봐야 겠다고 생각하고 돈을 지불한 뒤 나왔다.
그리고 다음 날에는 울산행. 고속버스를 타고 갔는데, 소요시간 5시간의 압박이 기다리고 있었다. 9시 차를 타고 오후 2시에 도착하는 여정이었으니, 도시락 격으로 도향촌에서 사들고 온 과자 두 가지를 가지고 탔다.

중간에 칠곡군 근처의 어떤 휴게소에서 정차했을 때 먹기로 하고 꺼냈다. 적은 수량이라서 그런지 종이 포장이었다.

포장을 풀고 나서. 십경월병은 여전히 '크고 아름다운' 자태를 자랑했고, 산사고는 뭔가 수상쩍은 색깔을 품고 있었다.

십경월병. 짤방만 봐서는 파악이 안되지만, 정말 크다. 손바닥 크기만한 약 2.5cm 두께의 월병인데, 예전에 처음 먹었을 때에는 저 월병 하나 만으로 한 끼를 때울 수 있었을 정도였다.

한 입 베어 물고 어설픈 접사 한 장. 카메라 자체의 열악한 화소와 찍은 사람 기술 부족으로 잘 보이지 않지만, 뭔가 다양한 색의 속재료들이 들어차 있는 걸 어렴풋이 볼 수 있다. 건포도, 잣, 땅콩, 해바라기씨, 호박씨, 호두, 기타 말린 과일이 콩고물 베이스에 가득 들어 있는데, 가격 압박에도 불구하고 인기 품목인 이유를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산사고. 산사나무 열매로 만든 양갱인데, 여전히 맛은 적응하기 어려웠다. 다만 '소화가 잘 된다는' 이유로 '복용' 하다시피 했다.
"음...마치 연양갱과 토마토 케찹의 중간적인 맛이 나고요. 음...표현을 하자면 굉장히 처음 보았지만 처음본 것 같지 않은 풍경. 그것은 마치 파바로티가 타지마할에서 벌이는 크로스오버의 향연. 터번을 두르고 뚫훍춤을 추는 파바로티. 하지만 도밍고와 카레라스도 없이 1인 4역을 하다가 2절에서 베리메리파스를 요구하며 버로우타는 그런 느낌을 받았습니다."아무튼 리허설과 공연 보고 곧바로 심야우등 버스를 타고 오는 과격한 일정이었기 때문에, 지금도 대략 정신이 멍한 상태다. (아무리 우등이라도 버스 안에서 숙면을 취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오늘 회복이 돼야 내일 서울시 청소년 교향악단 공연을 '제대로' 볼 수 있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