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 쓰지는 않았지만, 6월 21일에 울산에 공연보러 다녀왔고 그저께(13일)는 또 대구로 '출장(???)' 을 다녀왔다. 그 1박 2일 간의 여정;

고속버스로 가던 도중 들른 휴게소에서 찍은 한 컷. 애완동물을 데리고 여행을 다니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저런 '대안' 이 제시된 것 같다. 다만 아직까지 이용객은 많지 않은 듯.

어쨌든 오후 2시 30분 쯤 동대구 터미널에 도착했다. 대구 방문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고, 2002년과 2003년에 각 한 번씩 다녀온 적이 있었다. 그래서 그리 새로운 풍경은 아니었고.
다만, 이번 방문 목적이 '공연 관람' 이었던 만큼 나름대로 거는 기대도 남달랐다. 지금까지 공연보러 좀 멀리 나갔다 온 곳이 기껏해야 전주, 대전, 울산 정도였기 때문에, 나름대로 깃발을 꽂으러 간다는 의미도 있었고.

아무튼 공연장인 대구문화예술회관에서 제일 가까운 역이라는 1호선 성당못으로 가기 위해 터미널 바로 옆의 동대구역으로 향했다. 역시 친숙했던 역 입구.

역 안에는 때마침 그 날 볼 공연의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손떨림 때문에 흐릿하게 나오긴 했지만, '대구시립교향악단' 이라는 큰 글자는 확실히 알아볼 수 있다.

대구 교통카드는 당연히 없었기 때문에, 1100원이라는 꽤나 비싼 요금을 감수해야 했다. 지방 도시에서 종이 승차권 대신 재활용도가 높은 플라스틱 토큰식 승차권을 사용한다는 이야기는 들어 봤는데, 직접 실물을 접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다만 구식 디카 기능상 접사는 뷁.
그리고 중요한 공연...원래 목적은 최종 무대 리허설 보고 공연도 보는 것이었지만, 정작 공연장에 가 보니 리허설을 했는지, 아니면 안하는 건지 썰렁하기만 했다. (나중에 듣기로는 비가 온다고 해서 아침 일찍 시간을 당겨서 했었다고 함) 게다가 밖에는 기다렸다는 듯이 비가 쏟아지고 있어서, 거의 텅 빈 홀 로비에서 몇 시간이고 계속 썩어가는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그렇게 하염없이 기다리고 나서 공연을 보러 오는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오늘 공연의 협연자 인기 때문인지, 예매표 만으로 좌석이 다 나갔을 정도의 기현상이 발생했는데, 지방 공연으로는 매우 드문 '입석표' 까지 찍어내고 있었다. (나는 티켓링크로 일찌감치 예매했음)
일단 예매한 표를 받고, 공연 팜플렛을 나눠 주는 곳에 가 보니 예매 봉투를 제시하고 '경품' 을 받아가는 청중들이 눈에 띄었다. 물어보니 예매자들에게는 특별히 대구시향이 녹음한 CD를 한 장씩 준다는 것이었다. 녹음이나 연주의 질을 떠나 귀한 전리품이 공짜로 굴러온 셈이었다.
공연 중에 사진 안찍는 거야 당연한 거니까, 텍스트 만의 재미없는 짤막한 평을 하자면;
지방의 한계가 절감된 공연이었다. 특히 첫 곡으로 연주된 윤이상의 '무악' 에서 상당히 조야한 인상을 지울 수 없었는데, 목관의 섬세한 글리산도는 아직 그 '스킬' 이 부족하기는 했지만 나름대로 표현에 꽤 신경을 썼다는 느낌이었다. 다만 팀파니를 포함한 타악기 주자들은 작곡자가 지정한 섬세한 셈여림 지시를 거의 무시하고 피아노(p)와 포르테(f)의 구분만 하는 모습이었다. 좀 더 세부적인 측면에서 연습이 요구되는 대목이었고.
그리고 이 공연의 중요한 표몰이 요소로 작용한 라흐마니노프 파가니니 광시곡. 리즈 피아노 콩쿨에서 우승하고 정명훈 같은 유명 지휘자들의 러브콜을 받고 있는 김선욱이 협연자로 나왔는데, 공연으로는 처음 접하는 피아니스트였다.
파가니니 광시곡은 협연곡 치고는 20여 분 정도라는 비교적 짧은 길이의 작품이지만, 그에 반비례해 매우 변화무쌍하고 고난도 기교의 작품이라서 연주자의 '흥행성' 을 가늠하기에 좋은 곡이다. 그다지 높은 기대는 걸고 있지 않았지만, 기교도 거의 완벽했고 변주마다 나타나는 풍부하고 다양한 감정 표현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올해 본 협연 무대 중 가장 멋진 순간이었다고까지 생각됐다.
그리고 2부에서 연주된 브람스 교향곡 4번. 이 곡은 금노상 지휘로 두 번, 그리고 이 공연의 지휘자였던 김홍재의 지휘로 두 번(이 공연 합해서) 들은, 브람스 교향곡 중 가장 많이 실연으로 들은 곡이었다. 다만 김홍재가 2002년에 서울시향이랑 공연했던 것 보다는 좀 떨어지는 연주였는데, 금관 파트의 리듬이나 셈여림에 대한 감각이 해이해지는 경우가 많았던 점이 크게 작용했다. (특히 1악장과 4악장)
내 생각이야 그랬다고는 해도, 어쨌든 그 환호에 보답하기 위해 연주된 앵콜은 김홍재의 고정 레퍼토리 중 하나인 '림진강(임진강)' 의 관현악 편곡이었다. 이미 울산에서도 한 차례 들었지만, 이 공연은 김홍재 집안의 본가인 대구에서 진행된 최초의 공연이었다는 점에서 아마 남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었을 것이고.
공연 끝나고 간단히 김홍재+이철우 선생님께 인사를 드리고, 미리 약속을 잡은 대구 DC 클갤 유저 한 분과 밖으로 나왔다. 내가 그 게시판에서 언급했던 '돼지불고기와 기사우동' 을 흔쾌히 사주신다고 해서 만난 거였는데, 일단 점심도 못먹은 상태였던 만큼 허기를 때우기 위해 중앙로의 어느 한식당에서 부대찌개로 늦은 점저를 해결했다. (사진은 못찍었음)
그리고 도보로 북성로로 이동했는데, 금요일 밤 시간대에도 불구하고 중앙로를 벗어난 뒤로는 상당히 한산한 분위기였다. 듣기로는 내가 왔던 2002/03년과 달리 상권이 많이 변했다고 하는데, 북성로 쪽도 예전과는 달리 좀 침체돼 있다는 이야기였다. 아무튼 내가 기다리던 소위 '우동불고기 집' 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그 중 그 사람이 추천한 '북성로태능집' 에 들어갔다. '집' 이라고는 해도, 공터에 커다란 천막을 치고 영업하는 노점상이나 포장마차에 가까운 분위기였다. 일단 식사는 했으므로, 우동이랑 돼지불고기는 하나 씩만 시키고 소주 한 병을 추가로 주문했다. 대구 로컬 생산주 같았는데, 이름은 제대로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마 '좋은데이' 라는 제품 같았다.


주문한 것들이 나온 뒤 찍은 사진. 다만 그냥 찍자니 백열전구 불빛 아래서는 너무 어두침침하게 나와서, 플래시를 터뜨리니 저렇게 나와 버렸다. 특히 우동은 무슨 수제비처럼 나왔는데, 아무튼 소박한 차림새와는 달리 꽤 맛있는 음식들이었다. 특히 돼지불고기는 (아마 최상급 부위를 쓴 것은 아니었겠지만) 너무 짜거나 달지도 않아서 안주로 먹기에 딱 적당했고. 공짜 서비스로 나온 환타(유리병)도 가끔 목을 축일 때 요긴하게 쓰였다.
아무튼 몇 달만에 처음 마셔보는 술이라서 잘 넘어갔는데, 기분이 좋아지면서 슬슬 잡설 모드로 들어갔다. 대구 지역의 열악한 음악 환경에 대한 이야기, 오페라 축제에 관한 토론, DC 클갤 유저에 대한 이야기 등등. 그리고 그 이야기 와중에 특별히 내게 꽁짜로(!!!) 처분한다고 푸르트벵글러 지휘의 바그너 '반지' 전곡 EMI 세트까지 떠안겨 주셨다.

소주 두 병을 싹 비우고 자리에서 일어나 11000원-싸다!!!-을 지불한 뒤, 중앙로역과 꽤 가까운 찜질방을 잡아 주시는 대로 들어가서 작별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찜질방 사진은 다음날 아침에 나와서 찍었음) 그러고 보니 찜질방은 지금까지 딱 두 번 이용한 게 전부였는데, 그 두 번도 전부 대구였다는 점에서 또 특이한 케이스가 된 셈이다.
취기가 돌면서 숙면은 취하지 못했지만, 어쨌든 9시 쯤 일어나서 대구 방문의 두 번째 목적인 '지하철 완주' 를 행했다. 2002년도에 처음 갔을 때는 그냥 우방타워랜드만 갔다온 터라 버스고 지하철이고 이용할 기회가 없었고, 2003년도에 갔을 때는 마침 방화 테러가 일어난 뒤라서 파행 운영되고 있어서 뜻을 이루지 못했다.
4년이 지나고 나니 2호선도 개통되어 있었고 해서 전 구간 주파의 기록을 세울 수 있었다. 일단 소요 시간을 고려해서 표를 두 장 사서 1호선과 2호선 하나 씩 썼는데, 1호선 완주하고 중간에 잠깐 쉬기 위해 반월당 역에서 내렸다.

반월당 역은 환승역이라는 기능 외에 대규모 지하상가와 만남의 장소라는 역할도 하고 있었는데, 지하 광장 중앙에는 위에서 보듯 꽤 화려한 분수대도 마련되어 있었다. 분수대 주변에는 커플부대원, 노인 분들, 나들이 나온 모자, 휴가 (또는 외박)나온 군인들 등 다양한 사람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그리고 반월당 역의 또 하나 특이했던 점은 1호선 환승 통로. 역 끄트머리에 만들어 놓은 것은 서울의 많은 환승역과 비슷한 구조였지만, 특이하게 통로 외벽의 일부분을 유리로 대놓은 것이 인상적이었다. (비슷한 구조로 서울 5호선 군자역이 있지만, 반월당역과 달리 플랫폼 중앙에만 유리로 틔워놓음)

대구지하철의 거의 전 구간은 지하역이지만, 2호선의 문양역 만은 유일하게 지상 구간이다. 서울 2호선의 용답역이나 7호선의 장암역, 인천 1호선의 귤현역, 광주 1호선의 녹동역처럼 바로 옆에 차량기지가 있는 구조인데, 기지 외에는 그냥 농촌 마을이 전부여서 이용객은 상당히 적은 편이었다.


아무튼 이렇게 계획한 일정을 모두 마무리하고 버스에 올랐다. 저녁이 가까워서 해도 저물고, 짖궂은 비를 뿌려댔던 먹구름도 거의 걷힌 모습이었다. 언제 다시 방문할 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아쉬움 없이 보낸 이틀이었으니 짧지만 충분히 만족스러운 여행이었다.
p.s.: 광주, 대전, 부산지하철은 언제 타볼 수 있으려나...(나름대로 철덕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