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작곡가들 중 해외에 가장 널리 알려져 있고, 또 해외 작곡가들에게 막강한 영향력을 끼친 인물을 꼽으라면 아마 첫 번째로 언급될 인물이 다케미츠 도루(武満徹, 1930-1996)일 것이다. 도이체 그라모폰(DG)의 현대음악 전문 시리즈인 '20/21' 에서 음반이 몇 장씩이나 재발매되고 있고, 그 외에도 필립스나 낙소스 등지에서 신녹음도 계속 나오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다케미츠가 더 무서운(???) 것은, 음대나 음악원 등에서 정규 교육을 받지도 못했고 레슨 몇 번과 독학만이 음악 학력의 전부였음에도 자신만의 세계를 일찌감치 구축해 놓았다는 것이다. 물론 그 과정에는 드뷔시나 메시앙, 존 케이지 같은 선대 혹은 동시대 대가들의 영향력도 무시할 수 없겠지만, 그 기반에는 항상 일본 전통 음악 특유의 '마(ma. 음과 음 사이의 간격)' 같은 사상이 굳건하게 버티고 있기 때문에 '일본적인 현대 음악' 이라는 면에 있어서 다케미츠가 남긴 업적이 대단하다고들 하는 것일테고.
게다가 현대음악 작곡가로 활동하면서도 영화나 텔레비전을 위한 '대중적인' 작업이나 가가쿠 등 전통음악 방면에서도 작품을 남기는 등 전방위적인 활동 영역을 보유했던 것도 중요한데, 특히 영화음악이나 방송음악 같은 경우에도 그냥 상업적인 면에만 의탁하지 않고 현대적인 음향 효과를 치밀하게 계산해서 써넣는 수고스러움을 고집했다. 이 때문에 영화 '란' 에 음악을 붙일 때는 감독이었던 구로자와 아키라와 대판 싸우기도 했다고 할 정도였다.
다케미츠가 해외에 알려지게 된것은 약관 20대 후반 부터였는데, 1959년에 스트라빈스키가 일본을 방문했을 때 다케미츠의 작품인 '현을 위한 레퀴엠' 을 듣고 극찬하면서 부터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1967년에는 뉴욕 필의 음악 감독을 맡고 있던 레너드 번스타인이 악단 창립 125주년 기념작으로 의뢰한 '노벰버 스텝스' 로 서구 세계에 확실한 발판을 마련했고, 일찌감치 유럽과 미국에서 활동하던 지휘자 오자와 세이지가 다케미츠 관현악 작품들을 적극적으로 공연한 것도 꽤 든든한 응원군 역할을 했음은 물론이다.
오자와가 고국인 일본에서 본격적으로 지휘 활동을 시작한 것이 대략 1960년대 초반 부터였는데, 일본 최고라고 일컬어지는 NHK 교향악단의 객원 지휘자로 활동하면서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악단의 고참 단원들 입장에서는 아직 '애송이' 인 지휘자가 복잡하고 어려운 현대 작품을 프로그램으로 넣는 호기나 미국 스타일로 진행되는 리허설 방식 등이 마음에 안들었는지, 겨우 네 달만에 객원 계약이 취소되고 말았다. (그러나 그 기간 동안 메시앙의 '튀랑갈릴라 교향곡' 일본 초연 등 굵직한 업적은 확실히 남김. 참고로 튀랑갈릴라의 한국 초연은 올해 3월에 정명훈 지휘의 서울시향 공연으로 예정되어 있음)
일본 악단계의 보수적이고 파벌 위주의 폐쇄적인 분위기에 실망한 오자와는 다시 해외로 나가서 캐나다의 토론토 교향악단 음악 감독으로 활동하다가 1968년에 다시 일본으로 들어왔는데, 이번의 파트너는 일본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였다. 오자와는 수석 지휘자로 근무하면서 N향에서 그랬던 것처럼 다양한 신작들을 적극적으로 다루었는데, 다만 이번에는 악단이 재정난으로 흔들리다가 1972년에 공중분해되는 바람에 오리알이 돼버렸다.
그 때 단원들 중 1/3 가량이 오자와를 중심으로 새로운 관현악단을 만들기로 하고 빠져나갔는데, 그렇게 해서 결성된 악단이 바로 신일본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다. 기존의 일본 필은 자주 운영 체제를 내세우고 힘겹게 재출발한 끝에 결국 살아났는데, 오자와는 일본 필과의 관계가 불편했는지 신일본 필의 육성에 집중하다가 1975년에 다시 미국으로 떠났다.
오자와가 일본 필 수석 지휘자 시절 말기인 1971년에 그 당시로는 이례적으로 자신이 직접 악단을 지휘해 세계 초연한 '따끈따끈한' 신곡 두 작품을 도시바에 재빨리 녹음했는데, 그 두 곡이 바로 다케미츠의 '카시오페이아' 와 이시이 마키(石井眞木, 1936-2003)의 '소구(조우) II' 였다. 녹음 장소는 지금도 일본 필이 연습장 겸 상주 공연장으로 쓰는 도쿄 스기나미구의 공회당이었다(1971.6.22/24).
다케미츠의 '카시오페이아' 는 독주 타악과 관현악용의 협주 작품인데, 버르토크의 '현악기, 타악기와 첼레스타를 위한 음악' 처럼 작곡자 자신이 연주자들의 배치를 직접 설정한 곡이다. 금관은 무대 맨 뒷쪽에, 스트링은 두 그룹으로 나누어 금관 앞 양옆에, 그리고 관현악의 솔리스트들을 네 그룹으로 나누고 중앙에 독주 타악 주자가 위치하는 식으로 배열했다. 솔리스트 그룹과 타악 주자의 위치를 선으로 그어보면 'W' 자가 되는데, 카시오페이아 별자리의 모양과 딱 들어맞는 센스를 보여주고 있다.
솔리스트 그룹 악기 편성은;
1군: 플룻(피콜로 겸함)/클라리넷/콘트라바순/하프/기타/타악기(공, 탐탐, 앤틱 심벌, 마라카스, 마림바)/바이올린
2군: 플룻(피콜로 겸함)/오보에/클라리넷/바순/타악기(튜블러 벨, 탬버린, 마라카스, 서스펜디드 심벌)/비올라
3군: 플룻(피콜로 겸함)/오보에/클라리넷(E플랫 소클라리넷 겸함)/바순/타악기(튜블러 벨, 스네어 드럼, 마라카스, 앤틱 심벌, 서스펜디드 심벌)/첼로
4군: 플룻(알토 플룻 겸함)/오보에(코랑글레 겸함)/베이스 클라리넷/첼레스타/하프/타악기(공, 앤틱 심벌, 탐탐, 비브라폰)/바이올린
(*각 악기군의 타악기들은 주자 한 명씩 연주함)
그리고 독주 타악 주자는 연주가 시작되고 나서도 무대에 나타나지 않고 있다가, 자신의 연주 차례가 임박했을 즈음에 관객석에서 들어오는 식의 연출도 설정해 놓았다. 독주 타악용 악보는 연주자의 자발성에 상당 부분 의지하기 때문에 관현악이나 솔리스트 그룹용 악보보다는 좀 성긴 듯한 인상을 주지만, 주법이나 강약 지시는 굉장히 세밀히 기입해 놓고 있다.
*악보 예 1:
탬버린 솔로 부분곡 구조는 서주-정경 1-독주-정경 2 네 부분으로 크게 나뉘는데, 주요음으로 쓰이는 음은 도(C)와 라(A), 미플랫(Eb=독일어 표기법으로는 S) 세 개인데, 이것도 다케미츠가 나름대로 계산한 센스다. 해당 음들의 알파벳을 짜맞춰 보면 CASSiopeiA가 되는데, 이런 음의 의미 부여는 슈만의 피아노곡 '사육제(지명인 아쉬(ASCH)와 슈만 자신의 이름(SCHumAnn)을 활용)' 나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10번(자신의 성을 독일식으로 표기한 Dmitri SCHostakowitsch를 활용) 등에서도 선보였던 바 있으므로 그렇게 새로운 아이디어는 아니지만.
녹음에 참가한 타악 독주자는 초연 때와 마찬가지로 야마시타 츠토무(山下勉)였는데, 야마시타는 1971년에 세계 최초의 디지털 녹음을 일본 컬럼비아에 취입한 인물이기도 하고 한스 베르너 헨체의 '엘 시마론' 을 DG에 녹음할 때 타악 주자로 참여하는 등 현대음악에 대한 관심과 이해가 남달랐던 연주자였다.
두 번째 곡의 작곡자인 이시이 마키는 일본 현대무용의 초기 거장으로 유명했던 이시이 바쿠의 아들인데, 형인 이시이 간도 작곡가로 유명하다. 하지만 비교적 보수적이고 민족적인 작풍을 유지했던 형에 비해 그 당시의 최신 조류에 민감하게 반응하던 전위파로 이름을 날리고 있었다. 다케미츠가 주로 프랑스 근현대 음악 영향을 많이 받은데 비해 이시이는 베를린 고등음악학교에서 보리스 블라허와 요제프 루퍼에게 배운 탓도 있어서 독일 전위음악의 영향이 깊게 새겨져 있다. 그래서 작품의 외국어 표기나 악상 지시 등도 일본어 외에 독일어를 많이 사용했었고.
'조우' 라는 이름으로 작곡된 첫 번째 작품은 1970년에 나왔는데, 일본 전통 가로피리인 샤쿠하치와 피아노를 위한 2중주라는 편성이었다. 그 두 번째 아이디어로 작곡된 것이 이 '조우 II' 인데, 이번에는 서양 관현악에 일본 궁중음악인 가가쿠 합주를 협연시키는 좀 더 대규모의 착상이었다.
물론 이러한 퓨전 아이디어는 그보다 훨씬 전이었던 1930년대에도 이미 선보여진 바 있었는데, 작년에 낙소스 일본작곡가선집으로 나왔던 야마다 고사쿠 작품 CD 중 나가우타 교향곡 '츠루카메' 와 교향곡 '메이지 송가' 가 그런 경우였다. 전자는 '학과 거북' 이라는 고전 나가우타를 바탕으로 거기에 서양 관현악을 더해 작곡한 곡이고, 후자는 서양 관현악을 중심으로 히치리키(일본 전통 피리) 등의 일본 전통악기를 추가로 편성한 곡이었다.
하지만 시대가 시대였고, 작곡가가 작곡가였던 만큼 야마다처럼 일본 전통음악을 그대로 가져다 쓰지는 않았는데, 기본적으로 루퍼에게 배운 12음 기법을 사용하면서 거기에 음뭉치(톤 클러스터)와 미분음, 우연성 음악에서 따온 애드립 효과 등을 첨가하고 있다. 특히 애드립 효과의 경우 소그룹 인원에 국한시키지 않고 관현악의 한 파트 전체에까지 과감히 사용하고 있다.
*악보 예 2:
관현악 첼로 파트 중에서. 첼로 파트 주자 여덟 명이 각기 사각형 상자 안에 묶여있는 음들을 한 사이클로 해서 12~15초가량 자유로이 반복하도록 하고 있음. 지휘자는 그 시간 동안 가만히 있다가 큐사인을 줘서 다음 대목으로 넘어가도록 지시하게 됨.
가가쿠 합주는 연주 시작 후 대략 5분 뒤에 들릴듯 말듯 희미하게 나오기 시작하는데, 합주 전체가 한꺼번에 나오지 않고 쇼(생황)의 음뭉치가 먼저 나오고 거기에 고토나 히치리키 등의 악기와 가코 등의 타악기가 서서히 첨가되는 식으로 전면에 나타내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하지만 관현악 부분과 마찬가지로 전통 가가쿠 선율이 아니기 때문에 처음 듣는 이들이 쉽게 알아채지 못하기도 하는데, 이시이는 아마 이 '착청 효과' 를 (라벨이 '볼레로' 에서 의도했던 것처럼) 일부러 노린 듯 하다. 다만 가코가 통통거리는 소리는 확실히 일본적 혹은 동양적 냄새를 풍기고 있다.
음반에는 단순히 '가가쿠' 라고만 되어 있고, 연주자 이름은 모두 히라가나 병음도 없는 한자로만 표기되어 있어서 제대로 읽지도 못했다. 게다가 각 주자들이 담당한 악기에 대한 표기도 없는데, 다만 검색을 일일이 해보니까 거의 다 구나이쵸(궁내성) 악부 소속 연주자들이었다. 궁내성 악부는 도쿄의 황궁에 병설된 가가쿠도(아악당)에 상주하면서 황족을 위한 공연이나 해외 국빈들을 위한 행사 등에 동원되는데, 특이하게 일본 전통악기 외에도 서양악기도 다룰 줄 아는 연주자들을 기용하기 때문에 소규모의 서양식 합주단으로도 운용 가능한 편제를 취하고 있다.
이 음반의 복각판이 한국에 정식 수입된 것은 1990년대 중반이었는데, 도시바 EMI의 악명높은 '그랜드마스터' 시리즈로 들어온 CD였다. 그랜드마스터 시리즈는 지나치게 차갑고 날카로운 고음역과 역시 지나치게 키워놓은 저음역 등의 복각 방식으로 평판이 좋지 않았는데, 이 복각판 CD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러한 복각 방식 때문에 현대적인 곡이 더 현대적으로 들린다는 의외의 장점(???)도 있고.
ⓟ 1997 Toshiba EMI Co., Ltd.문제는 그랜드마스터 시리즈도 이미 일본에서 생산이 중단된 상태라는 것이고, 국내 수입분도 이미 오래 전 폐반된 상태라서 구하기가 무척 힘들다는 것이다. 게다가 저 두 곡 외에는 다른 커플링도 없다는 엄청난 자린고비 정신을 자랑하는데, 총 수록 시간이 40분도 채 넘지 않는 얌시러움을 자랑하고 있다. 아무튼 리마스터링 엔지니어 오카자키 토모야...아니 오카자키 요시오 나랑 다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