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스타프 말러(Gustav Mahler, 1860-1911)는 여러 가지 면에서 지금도 클래식 음악계의 '떡밥' 으로 작용하고 있는 인물이다. 특히나 독일계 음악의 영향력이 대단한 일본에서는 말러 교향곡 전곡 연주 시리즈가 마치 관현악단이나 지휘자의 역량을 테스트하는 듯 꽤 자주 열리고 있고, 한국에서도 임헌정 지휘의 부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전곡을 완주한 뒤로 화제의 궤도에 올라와 있다.
스승이라고 보기에는 좀 애매한 위치였지만, 자신의 작품을 엄청나게 뜯어고쳤던 브루크너처럼 말러도 자작곡을 여러 차례 수정하고 가필한 인물이었다. 다만 브루크너가 행한 수정과 가필이 곡의 궤도 자체를 바꿀 정도로 전면적으로 진행된 '재창작' 수준이었던 데 반해, 말러는 대체로 곡의 엑기스는 별로 건드리지 않고 주로 관현악 사운드를 손보는데 그쳤고. (물론 교향곡 6번의 망치 타격 횟수같은 경우에는 곡의 진행 양상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견해도 있다.)
사실 말러는 생전에 작곡가라기 보다는 주로 지휘자로 명성과 악명을 떨쳤던 인물이었는데, 물론 말러의 본래 성격이 꽤 문제가 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기존 곡이라도 꽤 많이 손을 봐서 연주하는 스타일이 '까이는' 데 일조한 것도 사실이었다. 베토벤 교향곡 3번 연주 때 호른을 기존의 3대에서 곱배기인 6대로 늘려 3악장 트리오의 유명한 호른 합주부가 왼쪽과 오른쪽에서 맞받아 연주되는 '스테레오 효과' 를 도입한 것 같은 연출에서부터 아예 새롭게 가필한 곡들, 베토벤의 현악 4중주 11번 '세리오소' 와 슈베르트의 현악 4중주 14번 '죽음과 소녀' 를 대규모 현악 합주로 재편곡한 것들이 특히 생전에 논란이 많았던 작업들이었고.
하지만 이런저런 개정판 악보들이 계속 나오고 있는 말러의 자작곡들에 비해, 말러가 편곡 혹은 개작한 작품들의 경우에는 상당히 뒤늦게 리바이벌이 되었다. 물론 이는 철저한 시대 고증에 기반을 둔 정격 연주가 대세가 될 정도로 클래식 연주계의 판도가 바뀐 탓도 있겠고, 악보를 구하기 힘들기 때문일 수도 있다.
가령 '세리오소' 와 '죽음과 소녀' 의 경우에도 말러의 자필보에서 출판 악보로 거듭날 때까지 거의 80년 가까운 시간이 걸렸는데, 그 전까지는 자필보의 복사본을 일일이 지휘자가 검토하고 사보가가 파트 악보를 만드는 수고를 해야 했기 때문에 연주가 더딜 수밖에 없었다.
그러한 '수고로움' 을 감수하고 저 영역에 도전한 지휘자들도 물론 있었는데, 이번에 소개할 물건들은 낙소스 뮤직라이브러리에 올라가서 들을 수 있었던 물건들이다.
로베르트 슈만(Robert Schumann, 1810-1856)은 손가락을 다칠 정도로 피아노 테크닉 연마에 몰두한 인물이었고, 피아노 독주곡들이나 가곡들을 비롯해 피아노를 사용하는 작품에 있어서 지금도 '넘사벽' 의 위치를 점하고 있다. 하지만 관현악 장르에서는 이야기가 좀 달라지는데, 익숙한 악기였던 피아노의 작곡 관점을 관현악에 대입시켜버린 탓에 좀 어이없는 대목이 많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슈만이 작곡한 교향곡들은 내용 자체로 봤을 때는 풍부한 낭만적인 상상력이 매력적이라고는 하지만, 연주 혹은 지휘하는 입장에서는 안습인 상황이 꽤 많이 발생한다. 그래서 비슷한 이유로 종종 평가절하 당하는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들처럼 슈만의 교향곡들을 후배 작곡가들이나 편곡자들이 새롭게 오케스트레이션하는 시도를 한 바 있는데, 물론 이런 시도가 항상 긍정적으로 비춰진 것도 아니었다.
말러는 초기작인 '츠비카우 교향곡' 을 제외하고 번호 붙은 1~4번 네 곡의 교향곡들을 모두 손댔는데, 1980년대 후반에 가서야 스웨덴 음반사인 비스(BIS)에서 전집 음반이 나왔다. 이탈리아 지휘자인 알도 체카토(Aldo Ceccato)가 노르웨이의 베르겐 필하모닉 오케스트라(Bergen Philharmonic Orchestra)와 만든 것이었는데, CD 번호로는 BIS-CD-361과 BIS-CD-394에 해당하는 물건들이다.
ⓟ 1987 & 1988 BIS Records AB체카토는 한국에 그다지 많이 알려져 있지는 않은 지휘자인데, 20세기 초중반을 대표한 명지휘자 중 한 사람인 빅토르 데 사바타의 사위이기도 했던 인물이다. 이탈리아 지휘자답게 프리마 돈나 비벌리 실즈와 녹음한 오페라 전곡이 몇 종류 있고, 장인이었던 사바타의 관현악 작품들을 영국 음반사인 샨도스에 녹음해 리바이벌시킨 공적도 있고.
일단 전곡을 다 들어보니, 물론 말러가 열중한 것이 오케스트레이션 보완이기는 했지만 몇몇 대목에서는 곡 자체를 뜯어고친 경우도 있었다. 아마 이 때문에 푸르트벵글러 같은 지휘자들이 말러 보완판에 비판적인 입장을 취한 것 같은데, 1번 1악장의 서주에서 금관의 음을 바꾼 것이나 2번 4악장 후반부 몇 소절의 삭제, 3번 5악장의 시작을 여리게(p) 바꾼 것 등이 크게 두드러진다.
물론 오케스트레이션 면에서도 슈만 시대에는 생각치도 못한 호른의 약음 주법이나 클라리넷의 고음역 악구 등이 종종 신선함 혹은 당혹감을 안겨주는데, 이러한 '현대적' 인 가필이나 편곡자 이상으로 개입한 대목들 때문에 지금도 종종 떡밥으로 이런저런 지휘자들이나 음악학자들이 물고 있는 것 같다. 어쨌든 체카토 자신은 슈만-말러 전곡을 최초로 녹음한 지휘자로서 애착이 대단한 것 같은데, KBS 교향악단의 정기연주회에 객원으로 출연했을 때도 메인 레퍼토리로 1번을 선택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슈만 교향곡들 외에도 말러가 손을 댄 작품들은 꽤 여러 가지가 있는데, 연말이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 1770-1827)의 교향곡 9번도 마찬가지였다. 이 곡은 합창이 들어가기 때문에 간혹 합창단의 규모에 따라 지휘자가 원곡의 2관 편성에서 4관 편성으로 확대해 연주하기도 하고, 푸르트벵글러나 카라얀 같이 1악장의 클라이맥스에서 텐션을 강화하기 위해 팀파니 한 세트를 추가해 연주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랜덤 편성' 의 전통을 아예 편곡으로 못박은 것이 말러의 오케스트레이션 보완인데, 위에 쓴 대로 4관으로 목관을 증배하고 호른은 종래의 4대에서 8대로 늘렸다. 거기에 베토벤 시대에는 아예 없었던 튜바도 들어갔고, 팀파니도 두 세트를 사용했다. 그리고 슈만 편곡에서 했던 것처럼 당대 악기들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현대 관악기들의 테크닉을 적극 활용했는데, 다만 곡 자체에 대한 가필은 거의 없다.
슈만과 마찬가지로 이 말러 보완판도 음반이 굉장히 드문데, 낙소스 뮤직라이브러리에 올라온 물건은 1992년에 미국의 브리지(Bridge)라는 음반사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리스계 미국 지휘자인 피터 티보리스(Peter Tiboris)가 체코의 야나첵 오페라 합창단(Janáček State Opera Choir)과 브르노 필하모닉 오케스트라(Brno Philharmonic Orchestra)를 지휘해 녹음한 물건이었다. (CD 번호는 BCD9033)
ⓟ 1992 Bridge Records, Inc.티보리스도 체카토와 마찬가지로 말러의 보완판 소개에 열중하고 있는 지휘자인데, 이 9번 외에도 3번과 5번, 7번 등의 여타 베토벤 교향곡들과 레오노레 서곡 2~3번, 서곡 '헌당식', 슈베르트 교향곡 9번, 모차르트 교향곡 40~41번의 말러 보완판들을 엘리시움과 알바니 등의 미국 음반사들에 녹음했다.
하지만 체카토건 티보리스던 간에 문제는 음반을 한국에서 구하기가 굉장히 힘들다는 점인데, 물론 아마존 등에서 인터넷 구매로 살 수는 있다. 그리고 이러한 '선각자' 들의 뒤를 따라 몇몇 유명 지휘자들이 편곡자 말러의 리바이벌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데, 특히 데카 전속인 리카르도 샤이의 경우에는 암스테르담 왕립 콘서트허바우 관현악단과 녹음한 말러 교향곡 3번의 여백에 바흐 관현악 모음곡들을 말러가 추려내 오케스트레이션한 것을 커플링해 화제가 되었다.
헨델의 '수상 음악' 을 비슷한 아이디어로 해밀턴 하티가 발췌 편곡한 음반들은 이런저런 것들이 있었지만, 말러가 행한 편곡은 그 동안 한참을 묻혀 있던 터였다. 그리고 샤이가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관현악단으로 이직하면서 슈만 교향곡들의 말러 보완판 녹음을 진행하고 있는데, 작년 2월에 2번과 4번을 담은 CD가 나온 바 있다.
여하튼 말러 보완판의 본격적인 리바이벌이 시작된 만큼, 고전 작품에 대한 개작이나 보완의 문제나 현대 악기의 사용에 대한 논의도 다시 활발해질 것 같다. 다만 말러 같이 후대에 이름이 남겨질 정도로 ㅎㄷㄷ한 사람이 아닌 '듣보잡' 편곡자가 똑같은 편곡물을 남겼을 경우에 이렇게까지 부각이 됐을까 하는 '형평성' 의 문제를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는 생각도 더불어 들고 있고.
뱀다리 1: 위에 잠깐 끄적이고 말았던 말러 편곡의 베토벤과 슈베르트 현악 4중주도 낙소스 뮤직라이브러리에서 들을 수 있음. 레프 마르키츠(Lev Markiz) 지휘의 암스테르담 신 신포니에타(Amsterdam Nieuw Sinfonietta) 연주로 비스에 녹음된 것인데, CD 번호는 BIS-CD-674이므로 참고.
뱀다리 2: 요즘 학교에서 플라톤부터 단토에 이르는 철학자들의 예술관을 논하는 수업에 참가하고 있는데, 저 토론에 말러의 편곡 작업물들을 떡밥으로 들고 나가면 어떨 지도 궁금해진다. 개인적으로는 토우메 케이의 '예스터데이를 노래하며' 2권에 나오는 타키시타의 대사가 정곡을 찌른거 같다고 생각되기도 하고.
"목소리 큰 사람이 '이건 예술입니다' 라고 하면 모두 그렇게 생각하게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