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동안 한국에서 중국이라는 나라는 6.25 세대들에게는 단순히 '인해전술로만 밀어붙이는' 나라로, 386 세대들에게는 '짝퉁과 불량 농산물 수출 국가' 정도로 평가 절하되고 있었다. 그러한 나라가 이제는 한국의 많은 기업들을 이전시키는 곳으로 변하고, 나아가 아시아 최초의 유인 우주선을 발사하는 등 점차 맹주의 위치를 넘보고 있는 수준이다.
음악 쪽도 마찬가지로 무시 못할 정도로 급성장하고 있는데, 비록 자국 내에 국한된 것이기는 해도 중국 국립 교향악단이나 중국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등의 CD를 필립스나 도이치 그라모폰 등 세계 유명 음반사가 제작할 정도이며, 필립 글래스 등의 거물급 작곡가들에게 신작을 위촉하는 등 국가 차원에서 나설 정도로 엄청난 투자를 하고 있다.
물론 중국의 고전음악계가 이렇게 성장하기 까지는 수많은 고난과 역경이 있었다. 6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문화대혁명은 수많은 음악인과 음악도들의 경력을 강제로 정지시켰고, 그 10년 동안 퇴보했으면 퇴보했지 결코 현상 유지를 할 상황이 아니었다. 제 1회 차이코프스키 콩쿨에서 2위를 했던 피아니스트 류시쿤과 10대 소년 공샹동이 각각 감옥의 벽과 건반을 그린 종이를 피아노 건반 대신 두드리며 연습을 했다는 일화는 지금도 자주 회자되곤 한다.
그나마 문화대혁명이 끝나고 정세가 차차 나아지던 70년대 후반, 보스턴 교향악단-오자와 세이지 지휘-과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카라얀 지휘-가 중국 공연을 가지면서 간접적인 '해빙' 을 상징했고, 두 관현악단이 중국 국립 교향악단과 합동 연주를 가지는 보기 드문 이벤트도 있었다. (이 두 합동 연주는 지금도 중국 국립 교향악단의 자랑거리로 남아 있고, 홈페이지에도 올라와 있다.)
현재 중국의 수도 베이징에는 여러 개의 관현악단이 활동하고 있는데, 위에 쓴 중국 국립 교향악단과 중국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외에도 베이징 교향악단이 있다. 이들 악단 중 중국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2000년에 중국 광파 교향악단(방송 교향악단에 해당)을 모체로 탄생한 신생 악단인데, '중국의 게르기에프' 로 불리는 지휘자 유 롱이 음악 감독으로 재직하며 빠른 상승세를 타고 있다.
중국 광파 교향악단은 지난 애청곡선 시리즈의 왕 시린 편에서 제공된 음악 파일의 연주를 맡았던 '베이징 방송 교향악단' 과 동일한 단체인데, 1953년에 소규모 관현악단으로 창단된 것이 시초였다고 한다. 단, 이 관현악단은 창단 때부터 아예 중국 음악만을 전문적으로 연주하기 위해 조직되었으며, 창단 후 10여 년 동안 많은 중국 작곡가들의 관현악 작품들을 방송으로 초연하는 등의 활동을 했다고 한다.
물론 이 악단도 문화대혁명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 기간 동안 이 관현악단은 다른 악단들과 마찬가지로 정부의 허가를 받은 대여섯 작품만을 연주하며 고착 상태에 빠져들고 말았다. 문화대혁명이 끝난 뒤 재편된 중국 광파 교향악단은 1980년대 들어 본연의 임무 외에 서양 작품의 연주 곡목 추가를 시작했는데, 아직 연주 실력도 부족하고 여러 면에서 미흡한 점이 많았다.
중국 광파 교향악단은 1988년에 일본으로부터 지휘자 한 사람을 초빙하게 되었는데, 바로 재일동포 지휘자인 김홍재였다. 당시 34세였던 김홍재는 일본 내의 수많은 아마추어와 프로 관현악단을 지휘하고 있었지만, 해외 공연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조선적이라 비자를 발급받기도 매우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조선적 지휘자와 중국 관현악단의 만남은 처음부터 쉬운 것이 아니었다. 지휘자는 겨우 숫자 몇 개를 셀 정도의 중국어를 구사할 뿐이었고, 관현악단은 지휘자가 생각한 만큼의 높은 수준도 아닌 상태였다. 게다가 그들이 2부의 메인 곡으로 선택한 것은 브람스의 교향곡 1번이었고, 이것이
창단 이래로 처음 연주하는 것이었다.
다행히 그들에게는 얼마 간의 시간이 있었다. 김홍재와 교향악단은 1주일 동안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도 높은 리허설을 했고-보통 관현악단의 리허설은 아침부터 점심 때까지임-, 첫 외국 공연이라는 의의와 첫 브람스 공연이라는 의의가 있는 연주회를 위해 계속 호흡을 맞추었다.
연주회는 7월 9-10일에 베이징 음악당에서 있었고, 1부에서 일본 작곡가/지휘자인 도야마 유조의 '관현악을 위한 광시곡' 과 북한 작곡가인 최성환의 관현악 '아리랑',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협연자 불명)이 연주되었다. 2부에서는 위에 쓴 대로 브람스의 교향곡 1번이 연주되었고, 앵콜곡으로 쩡루와 마홍여가 공동 창작한 관현악 '베이징으로부터의 기쁜 소식' 이 연주되었다.

이 공연 전체의 실황이 일본에서 카세트 테이프로 제작되었는데, 작년에 김홍재의 다른 카세트 테이프들과 함께 구할 수 있었다. 녹음 상태는 실황이라는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왕 시린 때의 CD보다도 훨씬 좋았는데, 단 라이너 노트가 하나도 없어서 위에 쓴 것처럼 제목도 모르는 곡과 협연자를 모르는 곡이 한 곡씩 있는 것이 아쉽다. (추후에 문의할 예정임)
물론 들어보니까 그 연주회가 완벽한 것은 아니었다. 특히 브람스에서 종종 눈에 띄는 실수가 있고, 시간과 의사 소통 문제로 미처 다듬지 못한 부분이나 '안전빵 속도' 로 나가려 한 대목도 나타났다. 하지만 이들은 1년에 한두 번밖에 공개 연주를 하지 않는 대학이나 아마추어 관현악단처럼 그러한 단점들을 덮어버리고도 남을 열정이 있었다. 타성에 젖은 1류보다 최선을 다하는 2류가 더 돋보이는 것은 이 경우에도 예외가 아니었다.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방송 교향악단이 온갖 세월의 역경을 지나고 브람스를 연주하기까지 35년이 걸린 셈인데, 중국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로 거듭난 뒤로 그 시간을 한참 따라 잡고도 남는 레퍼토리와 연주력을 빠른 속도로 보충하고 있는 만큼, 앞으로는 어떤 곡에 계속 도전할 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