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는 밑의 '인생구상' 글보다 더 먼저 썼어야 하는 글인데, 어쨌든 그냥 찌끄리겠습니다.)
외박 복귀가 얼마 안남았으니 또 다시 우울 모드 회귀 조짐. 3월 말에 2년차 나가는 것을 유일한 낙으로 삼을 수밖에 없는 순간이 점점 다가온다.
군 생활이야...블로그에 방금 쓴 글에서도 그랬듯이 항상 우울하고 불만 투성이라 그런지 요즘에는 자주 감상적이거나 과거 회상에 사로잡히는 듯 하다.
1년차 휴가 때였나? 김동률 라이브를 처음부터 쭉 듣다가 세 번째 트랙인 '새' 를 주의깊게 듣기 시작했다. 전람회 2집에 있던 곡인데, 다른 곡들과 마찬가지로 라이브를 위해 새로 어레인지한 탓에 상당히 '품위있는' 곡이 된 듯 하다.
하지만 '기억의 습작' 이나 '10년의 약속' 이 주었던,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과거에 대한 애잔한 추억이 아닌 무언가 희망을 남기고 있는 것이 참 색다른 감동이었다. 군대간 사람들이 가장 많이 듣는 김동률 넘버라는 말이 실감나는 대목이다.
음악을 듣고 '감동하는' 경우는 많지만, 그것이 곧 눈물로 이어지는 곡은 그리 많지 않다. 베토벤의 교향곡 9번 3악장과 현악 4중주 16번 3악장, 드보르작의 교향곡 9번 '신세계로부터' 2악장, 글라주노프의 교향곡 4번 1악장 정도가 내 기준으로는 '눈물을 흘리게 만드는' 넘버들이다.
라이브를 위해 편곡된 '새' 는 원곡보다 훨씬 더 감상적이다. 나이를 먹었다는 티가 나기는 해도, 뭔가 신비스러움까지 느껴지는 것이 특징인 듯. 그리고 한숨 쉬듯이, 혹은 눈물이 떨궈지는 듯이 주르륵 미끄러지는 스트링 구절이 더더욱 가슴시린 것 같다. 참 말로, 혹은 글로 설명하기 힘든 감정이다.
복귀를 얼마 남겨 놓지 않아서 였을까? 아니면 군 생활로 인한 박탈감과 상실감, 혹은 전역에 대한 동경 때문이었을까? 열 번 정도 반복해서 들으니 눈시울이 뜨겁게 젖는 것을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새벽 2시 쯤의 일이었으니, 나만 간직하고 있을 수도 있는 경험이었다. 대중음악을 들으면서 처음 느꼈던 서글프기도 하고 야릇하기도 한 감정. 늙어가는 것일까, 아니면 나약하고 두려운 나 자신을 점점 알아가기 때문에 그러는 것일까.
2차 외박도 어느덧 몇 시간 밖에 남지 않은 상황. 무엇을 써야 하나 고민하고 있다가 막연히 또 자판을 두드리는 중이다.
원하지도 않았던 전쟁과 분단, 그리고 그로 인해 계속 남겨진 세대와 이념 갈등, 그에 비해 너무도 대조적으로 멧돼지와 고라니가 뛰노는 너무도 청정지역인 민통선의 환경 속에서 어느덧 입대한 지 14개월이 넘어가고 있다.
물론 지금도 나는 내가 왜 전투복을 입고 있는가에 대해 아직도 심한 회의와 불만이 가득한 상황이다. 음악이라고는 고작 가요 밖에 들을 수 없고, 북과 대치 상황이라는 이유로 개인의 자유는 '합법적으로' 제약당하며, 마치 유배자와 같은 입장에서 생활하고 있는 현실에 굴복하고 있는 것일까?
하지만 1년을 넘기던 10월 부터는 갑자기 무엇인가를 하고 싶어지기 시작했다. 상병 짬이 되었으니...따위의 이야기가 아니라, 전역 후 정말로 하고 싶은 것들을.
일단 나는 지휘자를 첫 번째 꿈으로 설정하고 있다. 이는 지금도 변함이 없는, 하지만 여전히 자신감이 결여된 상황에서 꾸고 있는 비몽사몽임을 시인하고 싶다. 작곡과에 적을 두고 있는 이상, 졸업 때까지는 어떻게든 작곡을 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무엇인가를 창작할 때 오는 산통. 이것이 과연 얼마나 큰 지에 대해서 나는 아직까지 제대로 모르고 있는 것 같다. 그저 이리저리 휘둘리며 '과제 제출용' 으로 찌끄리고 있었을 뿐. 대학 생활 동안 학업에 관해서 그다지 만족하지 못했던 이유였다.
그래서 일단 전역 후에는 작곡가로서 내 자신을 최대치까지 끌어올려 시험해 볼 생각이다. 물론 이 땅에서 전업 작곡가로 먹고 살 수는 없다는 것은 너무도 뻔하기 때문에, 작곡 분야에서는 그 한 차례 시도가 앞으로 인생의 좌표 설정에 있어서 큰 전환점이 될 것 같다.
지금껏 써왔던 곡들-가곡, 피아노 3중주, 현악 4중주-을 아예 새로 쓰기로 마음을 독하게 먹었다. '내는 곡' 이 아닌, 정말 '골치아프게 머리 싸매며 낳는 자식같은 곡' 을.
가곡에서 특히 그 위험 부담이 큰 작업일 것 같다. 내가 지금까지 들어 왔던 싱어송라이터들에 대한 오마주가 그 컨셉이기 때문이다. 김동률의 '새' 를 비롯해 이소라, 유재하, 윤종신, 신해철, 김현철까지 여섯 명의 노래 가사만으로 만들 예정이다. 이름하여 '6개의 가요 가사에 의한 가곡집'. 물론 곡 자체는 완전히 새로운, 그러나 나름대로의 서정과 감성을 담아내고 싶다.
또 하나의 가곡 구상은 가능한한 민족성을 전면에 내세우는 컨셉. 이미 월북 시인 백석의 '고향' 을 잡아놓은 상태고, 여기에 두세 편의 시를 더 해서 '3(4)개의 민족 가곡집' 을 쓸 예정이다. 물론 이 계획에 있어서 대선배 김순남, 이건우, 윤이상, 조념, 이건용 등의 노래가 분명히 참고 자료가 될 것이고. 도시인이 흙냄새를 얼마나 느끼겠냐마는, 일단 내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자문의 역할도 할 수 있는 기획일 듯.
나머지 두 기악곡-피아노 3중주와 현악 4중주는 대략 민족성+현대성의 퓨전 시험대가 될 듯하다. 버르토크나 코다이를 벤치마킹할 듯 한데, 쇼스타코비치나 프로코피에프, 하차투리안의 작품도 참고할 예정. 이미 주제 장단(motto ritmico)으로 쓸 몇몇 악절을 기록한 상태다. 어쩌면 가곡 프로젝트보다 더 먼저 도전할 수도 있을 듯.
이렇게 짜낸 곡들로 복학 전에 학교 리사이틀홀을 빌려 나만의 음악회를 해보는 것이 지금 가진 가장 큰 꿈이다. 청중들-과연 얼마나 오겠냐마는-에게 들려주기 위해 연주회를 열기도 하는 것이지만, 무엇보다 내 자신의 음악이 울려퍼지는 순간에서 작곡가로서의 가능성을 판가름할 수 있으리라.
앞으로 10개월 남짓 남은 군 생활, 마지막까지 버텨내어 이 프로젝트가 정말로 공허한 메아리가 아닌, 진짜 현실이 되기를 바라며...이제는 정말로 내 자신에 대해 진지하고 심각하게 생각해 보아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