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 따라 어떤 때는 기분이 소위 '업되는' 때가 있을 것이고, 그렇지 않을 때도 분명 있다. 불행히도 지금 내 기분은 후자다. 제목과 달리 진척도는 시속도 아닌 일속 5mm도 안되는 곡 작업에, 명절까지 끼어서 한 알바 트러블에, 제사도 지내지 못했을 정도로 뒤숭숭한 가문 사정에, 그리고 가입해 있는 모 커뮤니티 사이트에서의 '페르소나 논 그라타' 들 때문에.
그래, '오타쿠' 라는 개념. 사실 일본에서도 그 단어는 부정적인 뉘앙스를 풍긴다고 해서 꺼리거나, 아니면 일부러 적의를 가지고 비난을 퍼부을 때 혹은 시니컬한 표현을 할 때 쓰이는 것이 다반사다. 이제 그 단어는 '오덕후' 라는 명칭으로 전이되어 한반도 남반부에도 상륙해 있다.
위에 언급한 모 커뮤니티 사이트는 대체로 코믹월드라는 행사를 '오덕후 소굴' 이라고 칭하며 '까는' 분위기가 대세다. 물론 그 '오덕후들' 중에 내가 끼어있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 고고하신 회원분들 판단 잣대로 따지면 말이다.) 하지만 그 사이트에서 '오덕후' 못지 않은 소위 '뻘글 러쉬' 를 하는 사람들이 그런 소리를 하니까 너무 웃겨서 말이지.
어쨌든 그런 이들이 보이는 즉시 차단에 차단을 거듭한 결과 차단 회원은 10여 명에 달하고 있다. 아마 언젠가는 그 커뮤니티를 아예 떠나버릴 지도 모르겠다. 내가 경색되어 있어서 그런가? 아니면 그 쪽이 너무 자유분방해서? 아무튼 차단이라도 시켜야 이 비뚤어지고 배배꼬인 소인배 눈에 그런 눈부신 계몽주의성 명문장들이 보이지 않을테니 말이다.
일단 본론으로 돌아오겠다. 사실 이번 코믹월드, 전역 후 가본 코믹월드 행사 중 가장 지름률이 저조한 행사였다. 제목처럼은 아니더라도 매우 빠른 시간 동안 두 행사장을 돌아봤고, 입장한 지 겨우 1시간 30분 만에 사실상 '할 거 다 한' 상태가 되었다.
기분이 그다지 좋지 않은 상황이라서 그랬던가? 아니면 눈에 밟히는 모 작품 관련 참가율이 상승세를 보이고 있어서인가? 어쨌든 지난 행사들과 달리 이목을 끌 만한 물건이 별로 보이지 않았다.
다만
모니카 화백과
cocoon 화백의 합동 부스인 '포니테일' 에서 출품한 엠마 회지 'Sweetheart' 는 좀 과장되게 말하자면 '모리 카오루 화백이 번외편 욕심을 내볼 만한' 내용이라서 '필이 확 꽂히는' 기분을 유발시켰다. 물론 당연히 그 자리에서 구입했고(4000\).
위의 회지 만큼의 파괴력(???)은 아니었지만, 그 외에는 여러 작가 합동의 컬러 일러스트 북인 'The Fighting Girl' 을 같은 이름의 부스에서 구입했고(4000\), 이어 예약해 놓았던 '편의점 소식지(2000\)' 를 위탁판매 부스였던
미르기닷컴에서 구입했다.
회지 외에는
양철공방에서 만든 코팅 일러스트 4종 세트(주작, 청룡, 현무, 흑룡섬 각 800\)와
로리꾼의 아뜰리에에서 만든 스즈미야 하루히+페이트 스테이 나이트 부직포 손가방(2000\), 페이트 할로우 아타락시아 공CD 두 장 세트(2000\. 덤으로 한 세트 더 받음), 세이버 액정클리너(1000\)를 구입했다. 총 16200\. 입장료 합해도 2만원이 넘지 않는 엄청나게 간소한 지름이었다.
물론 코믹월드의 행사 진행 자체에 대한 불만은 여전하고-굳이 3일을 할애해야 했는지도 의문이다-, 몇몇 꼴불견들의 상식 이하 행동도 여전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보기에 그 속도가 매우 느리기는 해도 점차 나아지는 추세인데, 이제 코믹월드 자체에 대한 불만 보다는 코믹월드에 참가하는 사람들을 '막장 오덕후' 로 몰아붙이는 이들에 대한 어이없음과 불쌍함이라는 감정이 앞서는 것 같다.
날씨는 겨울임에도 이상하게 춥지 않았지만, '오덕후 색히들' 을 연호하며 열정적으로 풀무질을 하는 키보드 워리어들 때문에 심리적인 추위가 뼛속까지 스며드는 토요일이었다.
p.s.: 코스 사진을 찍고자 전시장을 나온 뒤 이리저리 돌아다녔는데, 입장할 때 목격했던 '채운국 이야기' 의 홍수려를 코스한 사람은 끝내 찾지 못한 것이 무척 아쉬웠다. 어쨌든 다음 두 장을 겨우 건졌다.

레고 코스프레(...). '타도 옥스포드' 라고 적힌 노트를 들고 다니던 강렬한 포스에 힘입어 찰칵.아리아 운디네 6인조 코스프레. 아카리 외에는 모자가 없어 아쉽긴 했어도, 코믹월드에서 처음 목격한 탓에 주저없이 찰칵.
1980년대부터 '객석' 등 몇몇 예술잡지에서 (굉장한 용기를 내서) 북한의 음악에 대해 소개하기 시작했을 때, 그 루트는 절대 다수가 일본을 통해서였다. 카라얀 콩쿨에 1위 없는 2위로 입상해 화제가 된 지휘자 김일진을 인터뷰한 것도 일본에서였고, 조선 국립 교향악단이 본격적으로 국내 잡지에서 다루어진 것도 일본 공연(1992) 때 도쿄 등지에 상주하던 기자들이 쓴 리포트가 최초였다.
이는 일본 교포 사회의 기묘한 특수성 때문이었는데, 그 이유는 이미 바이올리니스트 정찬우와 관련해 쓴 글 등에서 밝힌 바 있으므로 더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 '특수성' 은 1955년에 조선적 교포들만의 예술단체인 '재일조선인중앙예술단' 의 창단으로 예술 방면에서도 구체화 되었고, 이 단체는 1974년에 현재의 명칭인 '금강산가극단' 으로 개명되었다.
금강산가극단은 이미 남한에서 몇 차례의 공연을 가졌고, 윤도현 밴드와의 합동 공연 등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국악 쪽에서도 가극단 전체는 아니지만, 장새납 주자 최영덕이나 대피리 주자 리재호, 지휘자 김경화 등이 '겨레의 노래뎐' 등의 공연 시리즈를 통해 남한의 국립국악관현악단과 협연한 바 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금강산가극단은 주로 무대예술 형태의 공연에 치중하는 단체다. 그 때문에 북한의 여러 예술단이 가진 편제를 많이 참고하고 있는데, 성악가나 기악 연주가, 무용수, 공연 기획/제작자 등 공연에 관계된 거의 모든 직책의 인물들이 단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 중 이번에 소개하고자 하는 것이 가극단의 기악, 특히 '민족기악' 을 위주로 하는 민족기악중주단이다. 소해금, 단소, 고음저대, 저대, 대피리, 저피리, 가야금, 옥류금 등 북한에서 개량한 악기 위주로 편성되어 있는데, 대해금과 저해금은 아직 보급이 안되어 있는지 첼로와 콘트라베이스로 대체하고 있다. 중국(1986), 러시아(1987), 미국(1999) 등 외국에서도 공연을 가졌고, 남한에서도 위에 쓴 바 있듯이 2000, 2002, 2003년에 공연한 바 있다.
2004년에는 중주단 단독으로 일본 각지를 돌며 공연을 가졌는데, 공연 직전인 3월에 도쿄 긴자에 있는 스튜디오 온쿄 하우스에서 공연 레퍼토리 위주로 녹음을 한 바 있었다. 이 녹음이 그해 말에 순회 공연 종료를 기념하는 의미에서 CD로 출반되었다.
계속